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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1 3부자의 특별한 제주 여행

작성자 : 동아일보

(2022-09-27)

조회수 : 1703

기사입력 2011-09-01 03:00:00 기사수정 2011-09-01 11:26:19

.형제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첫 가족여행…
고통스러운 비행기 여정… 아들은 아버지 무릎에 머리 파묻고…


불치의 근육병을 앓고 있는 형제가 아버지와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가족 여행을 떠났다. 25일 난생처음 와 본 제주 서귀포시 섭지코지 인근 정원에서 세 부자가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왼쪽부터 작은아들 박현진, 아버지 박승훈, 큰아들 박현민 씨.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사진 더 보려면 Click! [속보] 라식/라섹 49만원? 최저가!! 정력남 부러워? 101가지 비법공개!20대 초반을 넘기기 어려운 병이라고 했다.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 폐 근육까지 마비돼 질식하듯 죽어가는 근이영양증. 박승훈 씨(51)의 두 아들은 모두 이 병을 앓고 있었다. 현민(25) 현진 씨(19) 형제는 모두 이 근육병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 천형(天刑)이나 다름없었다. 형제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현민 씨는 이 병 환자들의 평균 수명을 이미 넘겼다. 폐가 상당 부분 굳어 하루 14시간을 산소호흡기에 의존한다. 앉아 있기도 어렵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한다. 현진 씨는 형의 6년 전 모습이다. 형은 동생의 미래이고 동생은 형의 과거였다. 이들은 늘 집에 누워 함께 지냈다.

형은 생을 마감하기 전에 바다 냄새를 맡고 싶어 했다. “사방이 뚫린 곳에서 바다 냄새를 맡고 싶다”는 말을 수백 번 되뇌었다. 동생은 5월 형의 소망을 담아 소원성취 기관인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 사연을 보냈다. 두 달 만에 당첨 소식이 왔다. 평생 병마와 싸워야 하는 두 아들을 바라보기 힘들어 하던 엄마가 14년 전 집을 떠난 뒤 세 부자(父子)가 함께하는 첫 여행이었다. 세 남자는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게 됐다. 기자도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여행을 함께했다.

○ 고통스러운 여행의 시작

고작 2박 3일 여행이지만 24일 경기 성남시 현민 씨 집 앞에는 어른 가슴 높이의 짐 가방이 3개나 나와 있었다. 가방 안에는 산소호흡기, 호흡조절기 등 의료장비와 환자용 매트가 담겨 있었다. 트럭까지 불러 짐과 휠체어를 싣는 아버지에게 아파트 경비원이 물었다. “오늘 이사 가시나 봐요.”

마음은 들떠 있었지만 난생처음 비행기 여행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34kg가량의 현민 씨를 안고 기내에 들어갔다. 좌석 3개를 확보한 뒤 오른쪽 끝에 아버지가 앉고 왼쪽 두 자리에 현민 씨를 뉘었다. 아버지 무릎에 머리를 파묻은 현민 씨는 왕방울만 한 눈을 깜박이기만 했다.

비행기가 뜨기 전 승무원이 아버지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정상적인 비행 중 사고에 대해서는 보호자가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였다. 죽음을 앞둔 자식에게 이런 서약서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다른 불치병 환자 가족처럼 아들에게 허락된 시간이 더 소중했는지 아버지는 주저 없이 서류에 사인했다. 그들은 이미 살기 위해 마음 졸이지 않는 방법을 터득한 듯했다.
○ 바다를 가슴에 품다

힘겨운 비행 끝에 도착한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해안휴양지인 섭지코지가 이들의 첫 행선지였다. 아버지는 관광에 앞서 미리 얼려온 생수통을 형제들 품에 안겼다. 땀이 많이 나면 식으면서 감기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오르자 작은아들 현진 씨가 손짓을 한다. 소변이 급하다는 신호였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후미진 곳으로 옮긴 뒤 페트병을 꺼내 능숙하게 소변을 받아냈다.

현진 씨는 전동 휠체어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마음껏 바다 구경을 했지만 휠체어에 누워 있는 형은 곁눈질로 바다를 내려다봤다. 아버지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형 현민 씨를 아기처럼 끌어올렸다. 제주의 푸른 바다는 그렇게 맏아들의 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어깨에 팔을 기댄 현민 씨는 신기한 듯 바다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바다 향기를 담아 가겠다”며 지그시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했다. 병으로 쇠약해진 호흡기 근육이 경련을 일으킨 것이다.

다시 휠체어에 누운 현민 씨는 동생을 바라보며 기자에게 말했다. “저도 몇 년 전엔 저렇게 돌아다녔는데…. 동생이 부럽기도 하지만 저 녀석도 곧 저처럼 될 것 같아서 그게 참 불쌍해요.”

○ 큰아들의 유일한 효도

아버지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목욕 준비를 했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두 아들은 땀에 젖어 있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아버지는 현민 씨 먼저 욕실로 안고 가 옷을 벗겼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다리는 아버지 손목보다 가늘었다. 새하얀 피부엔 핏기가 없었다. 척추측만증까지 겹쳐 등은 S자로 휘어 있었다. 박 씨는 큰아들이 초등학생 때 찍은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아동복이 꽉 낄 만큼 통통했던 그가 이렇게 변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욕조를 놔두고 차가운 욕실 바닥에 아들을 뉘었다. 욕조에서 미끄러진 아들이 옴짝달싹 못한 채 질식사할 뻔한 기억 때문이다. 현민 씨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아빠, 여기까지 와서 힘드시죠”라고 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슬픈 미소’가 번졌다.

박 씨는 저녁 식사를 내오며 소주 한 병을 가져왔다. 두 아들 입에 밥 한 숟가락을 먹일 때마다 그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지독한 불면증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평소 매 시간 일어나 두 아들의 근육이 뭉치지 않도록 수시로 자세를 바꿔준다. 산소호흡기를 끼고 자는 현민 씨의 상태도 살펴야 한다. 그러다보니 10년 넘게 깊은 잠을 자 본적이 없다.

그걸 아는 현민 씨는 아버지가 깰까봐 혼자 끙끙대는 날이 많다. 현민 씨는 “그것 외에 아버지에게 효도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 수없이 떠올려본 자살

14년 전 아내가 집을 나가고 혼자가 됐을 때, 아버지는 수없이 자살을 떠올렸다. 불치병에 걸린 두 아들을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감뿐 아니라 간병을 위해 공무원 생활까지 그만둬 경제적 궁핍도 심각했다.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비 100만 원이 전부였다. 높은 곳만 가면 뛰어내릴 생각이 들까봐 한동안 베란다에도 나가지 못했다. “술에 취하면 애들한테 ‘베란다에서 함께 점프할까’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둘째가 형 손을 꼭 잡습디다. 목숨이란 게 그렇더군요.”

주변에선 두 아들을 장애인시설로 보내고 새 장가를 들라는 권유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두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글쎄요…. 애들한테는 좋을지 몰라도 저는 혼자 못 살아요.”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전용매트에 두 아들을 차례로 눕혔다. 현민 씨에겐 산소호흡기를 씌웠다. 현진 씨는 호흡 조절기를 물린 채 숨쉬기 훈련을 시켰다. 이 연습을 열심히 해야 형처럼 되는 날을 늦출 수 있다. 연습을 조금만 해도 가슴 통증이 심해진다. 현진 씨가 못 하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형이 나서서 “나처럼 되고 싶냐”고 했다. 여행중 형이 화를 낸 건 그때가 유일했다. 비장애인이 평소 느끼지도 못하는 숨쉬기가 이들에겐 매일 밤 생사를 걸어야 하는 일이다.

현진 씨의 호흡기를 누르던 아버지가 숨이 가쁜 듯 주먹으로 가슴 왼쪽을 치기 시작했다. 두 아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심장도 안 것일까. 아버지도 아들을 돌보느라 몇 년 전 심장에 병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심장 판막수술까지 받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있다.

○ 아버지의 편지

어렸을 적 공군비행사가 꿈이었던 현민 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친구를 사귀어 보겠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 뒤부터는 마음을 비웠다. 그 대신 매일 같은 옷만 입는 아버지를 위해 직접 돈을 벌어 옷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에게는 마지막 꿈인 셈이다. 현민 씨는 “아버지한테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고 가야 할 텐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현민 씨는 자신을 품어준 세상에 ‘자신의 마지막’을 남기기로 했다. 지난달 동생과 함께 장기기증서약을 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15년 전 기증서약을 했다.

여행 마지막 날 밤, 아버지는 잠자리에 누운 두 아들 사이에 앉아 붉은색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남자끼리 지내다 보니 평소 깊은 대화가 없었는데 모처럼 용기를 내 쓴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들 현민, 현진아. 아빠가 너희 나이 땐 참 꿈이 많았는데 너희들이 온종일 집에만 누워있는 걸 보면 다 내 죄인 것 같아 가슴이 메도록 쓰리구나.’

산소호흡기를 하고 누운 현민 씨는 아버지가 편지를 읽는 동안 눈물로 그렁그렁해진 두 눈을 계속 깜박였다. 자식에게 큰 짐을 지운 것을 자책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버리지 않고 키워준 것에 대한 감사함…. 그들의 ‘아름다운 여행’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제주=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