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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0 오바마에 속지 말자

작성자 : 이철호의 시시각각

(2022-09-27)

조회수 : 1540

[중앙일보] 입력 2010.11.10 19:33, 이철호 논설위원

 아이폰에 맞선 삼성전자 갤럭시S의 반격이 무섭다. 일본과 유럽에선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분을 참지 못해 갤럭시S를 내동댕이쳤다는 이야기까지 나돈다. 갤럭시S 성공에는 숨은 비밀이 하나 있다. 외국의 고급인력이다. 7년 전부터 삼성 이건희 회장은 “천재(天才)를 모셔오든지 길러내라”고 재촉했다. 지난해 말부터 삼성전자는 해외에서 50여 명의 스마트폰 고급 인력을 소리 없이 영입했다. 상당수는 미국에서 공부한 인도 출신이었다. 삼성은 채식주의자를 위해 별도의 식단까지 마련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애플도 잡종강세(雜種强勢)로 유명하다. 2001년 잡스는 단 두 명의 직원에게 비밀지령을 내렸다. 아시아 출신의 스탄(Stan Ng). 입사 5년의 신출내기인 그는 예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 푹 빠졌다. 음악 DJ 를 하면서 이어폰을 끼고 살았다. 다른 한 명은 레바논에서 건너온 소프트웨어 분야의 토니 파델(Tony Fadell). 수개월 전 애플에 합류한 풋내기 계약직 사원이었다. 이들이 만든 비밀병기가 아이팟이다. 애플의 화려한 부활도 천재들의 방랑벽까지 잠재우지 못했다. 파델은 얼마 전 “애플에서 더 이상 재미난 일이 없다”며 짐을 쌌다.

 지난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교환교수를 한 서울대 김모 교수의 이야기다. “큰일 났다. 민족사관학교나 대원외고 출신들도 그곳에서 헤매고 있더라. 상당수가 토론이나 에세이를 못 따라가니 학점이 제대로 나올 리 있는가. 한마디로 창의력이 문제다. 아이비리그의 분위기도 싸늘하다. 입학사정관들부터 한국 인재들이 고시(考試)와 의대로 빠지는 걸 다 알고 있더라.” 갈수록 한국 출신의 문호가 좁아지는 건 당연하다. 김 교수는 “서울 강남에 아이비리그 출신의 SAT(미 대학수학능력시험) 강사가 넘쳐나는 현상은 국가적 비극(悲劇)”이라 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반대다. 틈만 나면 한국 교육을 격찬한다. “한국을 본받자” “미국도 분발해야 한다”…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속아넘어가선 안될 일이다. 그의 발언이 교육예산을 지키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진짜 부러워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가 칭찬한 것은 한국 교육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교육열(熱)’일 뿐이다.

 요즘 우리 교육 현장에선 한꺼번에 무상급식을 할지, 단계적으로 할 지 싸움이 한창이다. 온통 어떻게 먹일지만 관심이고 어떻게 교육시킬지는 뒤켠이다.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의 ‘친(親) 서민’ 노선에 따라 사교육과의 전쟁에 매달려 있다. 내신 성적만 중시하면 교육 문제가 다 풀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사이에 국내 기업의 입맛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넘쳐나는 범용인력 대신 창의적인 고급인력에 목말라하고 있다. 국적도 상관없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준으로 현재 45%인 해외인력 비중을 2020년까지 65%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뒤늦게 스마트폰에 시동을 건 LG전자도 마찬가지다. 해외 고급 인력 스카우트에 팔을 걷어붙였다. 삼성과 LG는 잡종강세에 힘입어 10년 뒤에도 잘 나갈지 모른다. 우리 경제도 그럭저럭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10년 후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 국내 단순인력 시장은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에 지배된 지 오래다. 이런 현상이 ‘양질(良質)의 일자리’까지 침범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과연 무상으로 급식하고 사교육만 뿌리뽑으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보장되는 것일까. 10년 뒤 우리 아이들의 진짜 경쟁상대는 누구일까. 혹시 중국·인도의 교실에 앉아 있는 중·고생은 아닐까. 그들에게 밀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 깊어가는 게 아닐까. 백년대계(百年大計)는 기대조차 않는다. 정권 교체에다 교육감 선거까지 겹치면서 우리 교육의 차선 변경주기는 2~3년으로 짧아졌다. 갤럭시S의 수퍼아몰레드 화면에 뜨는 현란한 영상을 보면서 자꾸 생각이 복잡해진다.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