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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6 [생명의 詩] 빈 운동장의 경주

작성자 : 이어령

(2022-09-27)

조회수 : 1637

[이어령] [생명의 詩] 빈 운동장의 경주

어머니 운동회날입니다.

줄마다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는 하얀
운동장을 달렸습니다. 햇빛이 너무 부셔
모자 차양을 세우고 달렸습니다.

숨이 차고 발이 떨어지지 않아도
심장이 터지라고 뛰었습니다.
상장이 탐나고 박수를 받고 싶어
그렇게 뛴 게 아닙니다.
마치 먹이를 좇는 사자처럼
혹은 사자에 쫓기는 가젤처럼
옆에 아이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오늘에서야 압니다. 어머니. 운동회가 끝났는데도
운동모자와 런닝셔츠를 벗었는데도 나는
지금도 뛰어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누가 호루라기를 불어서가 아닙니다.

목숨이 있어서 바람이 불어서 숨차냐고
어머니가 물으셔도
나는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생명의 나무들과
함께 경주를 합니다.
-, 62~6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