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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Book 운명이다

작성자 : 노무현

(2022-09-27)

조회수 : 1715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이른바 생계형 범죄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한 판사였다. 닭서리를 하다가 잡혀온 젊은이나 소액의 '촌지'를 받았다가 기소된 하급공무원들에게는 무죄나 집행유예를 주려고 애썼다. 사연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입견에 사로잡혀 구속영장 서류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대충 영장을 발부한 일도 있었다. 판결을 내릴 때 법원직원의 청탁 때문에 영향을 받은 적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결국 1년도 다 채우지 못하고 판사직을 그만두었다. 더 계속했더라도 훌륭한 판사가 되지는 못했으리라 생각한다."(67쪽)

"1988년 7월 임시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을 하면서 참담한 노동현실에 대한 분노를 있는 그대로 터뜨려버렸다.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발전을 위해서, 케이크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야!" 국회의원 사무실로 수없이 많은 격려전화가 왔다. 그러나 당장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103쪽)

"인터넷 세상에서 나는 '바보 노무현' 이 되었다. 유리한 종로를 버리고 또 부산으로 가서 떨어진 미련한 사람. '바보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 이래 사람들이 붙여주었던 여러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내가 바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볼 때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당장 손해가 되는 일이 멀리 보면 이익이 될 수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바보처럼' 살면 나라가 잘 될 것이다."(162쪽)

"용암처럼 일렁거리던 촛불바다는 텔레비전 뉴스로만 보았다. 쉼터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아내는 우리 편이 저렇게 많이 왔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겁이 났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밤마다 촛불을 들고 와서 나를 탄핵에서 구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게 무엇을 요구할까?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촛불시민들의 함성에 실려 왔다." (240쪽)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 대통령을 하고자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고 한 것이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사람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원망할 수 없었다. 나는 야망이 있어서 스스로 준비하고 단련했지만, 그들은 나로 인해 아무 준비 없이 권력의 세계로 끌려들어 왔다.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들이 고초를 겪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억눌린 노동자를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하였던 일이 이렇게 끝나리라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했다면, 애초에 정치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3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