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9 [엄마의 마음] 나는 20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작성자 : 이철환
(2022-09-27)
조회수 : 2927
[곰보빵]의 '쌍둥이 눈사람'
글: [연탄길][행복한 고물상]의 저자 이철환
내가 아홉 살 때 우리 엄마는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사는 산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2층 집에서 살았고 한 달에 한 번 집에 왔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던 고물상이 기울대로 기울어 먹고 사는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식모살이를 간 부잣집에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할머니 곁에서 끼니를 챙겨 드리고 병수발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 해 겨울은 다복다복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산동네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고물상 앞마당은 온통 눈밭 이었습니다.
한 밤중, 그지없이 아름다운 눈밭 위에 서면 눈부시게 명멸하는 푸른 별빛들......
그 별빛은 엄마의 얼굴이었다가, 엄마의 눈빛이었다가, 어느새 엄마의 눈물이 되곤 했습니다.
매일 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면 형과 함께 먼 길을 걸어 엄마가 일하는 2층집으로 갔습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길가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엄마를 부를 수는 없었지만 그 곳에 가면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겨울 햇살이 푸슬푸슬 둥지를 튼 담벼락에 기대앉아 형과 나는 아무 말 없이 해바라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어느 추운 날이었습니다.
엄마가 살고 있는 집 대문 앞을 서성이는데 엄마 얼굴이 보였습니다.
엄마는 2층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습니다.
내가 엄마를 부르려하자 형이 내 입을 틀어막고 나지막이 속살거렸습니다.
"엄마 부르지 마. 엄마한테 혼난단 말이야."
하지만 나는 끝내 엄마를 소리쳐 불렀습니다.
내 목소리를 듣고 엄마는 급히 내려왔습니다.
보름이 넘도록 엄마 얼굴을 보지 못한 나는 울면서 엄마 품에 안겼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의 따뜻한 품속에서 나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으니까요…….
그 때, 내 나이 겨우 아홉 살 이었으니까요…….
엄마는 말없이 내 등을 쓸어주었습니다.
엄마의 젖은 눈 속엔 라일락 흰 꽃송이가 하늘하늘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우리 형제를 대문 앞에 세워두고 잠시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주황색 라면 봉지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라면 봉지는 안에는 엄마가 주인 할머니 몰래 가져나온 갈비 세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집에 가서 누나하고 하나씩 나눠 먹어.
그리고 엄마하고 약속해. 다시 는 여기 오지 않겠다고."
"......"
마음 밭 깊은 곳에 할 말을 묻어두고 형과 나는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얼은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엄마는 따뜻한 손으로 닦아주었습니다.
짚단 같이 서 있는 엄마가 콩알만큼 작아질 때까지
나는 뒤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산동네 고갯길에서 허기진 형과 나는 라면 봉지에 들어 있는 갈비를 하나씩 꺼내 먹었습니다.
고기를 뜯어 먹고 손에 묻어있는 양념을 모두 빨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갈비 냄새가 배어 있는 손끝 을 몇 번이고 코끝에 갖다 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갈비 하나가 들어 있는 라면 봉지를 누나에게 주었습니다.
"누나 이거 먹어. 엄마가 준 건데 진짜로 맛있어."
"철환이, 너 먹어."
누나는 갈비를 먹지 않고 막내인 나에게 주었습니다.
누나도 겨우 12살 초등학생이었는데…….
방 문 밖, 의자에 앉아 누나가 준 갈비를 먹고 있는데
열려진 방문 틈 사이로 봄맞이꽃처럼 창백한 누나 얼굴이 보였습니다.
누나는 라면 봉지에 묻어있는 갈비 양념을 조그만 손으로 찍어먹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날 밤 늦도록 산동네 어둠을 찢으며 까마귀 울음소리가 소소했고,
누나의 창백한 얼굴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날 이후로도 엄마가 보고 싶으면 나는 형과 함께 엄마가 사는 집으로 갔습니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던 그 해 겨울,
은피라미처럼 반짝거리며 눈송이가 사륵사륵 길 위에 내려앉으면,
형과 나는 발 도장을 찍어 눈밭위에 오불오불 꽃잎을 만들었습니다.
배가 고파오면 엄마가 가르쳐준 노래도 불렀습니다.
엄마가 살고 있는 집 대문 앞에 쌍둥이 눈사람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형, 우리는 쌍둥이니까, 쌍둥이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가면 엄마가 좋아 할 거야. 그치?"
"......."
형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형, 엄마는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가 봐……."
고개만 끄덕일 뿐 형은 여전히 말이 없었습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우두망찰 서 있다가 '찌찌찌찌......'
곤줄박이 우는 소리 자욱이 자지러지는 저녁,
우리는 눈길 위에 다문다문 발자국을 찍으며 산동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추운 겨울이 두 번 지나도록 엄마가 있는 집까지 그 먼 길을 오가며
우리 형제는 배춧잎처럼 나박나박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어린 자식들 잠든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엄마가 매일 밤 산동네 집에 다녀갔다는 것을…….
달빛 내린 창가에 서서, 어린 자식들의 얼굴을 엄마가 눈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나는...... 나는 20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일하던 2층 집 담벼락에 몽당 크레파스로 꾹꾹 눌러 써 놓은
'엄마'는 아직도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았는데…….
내 어린 시절은, 몇 발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지금도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 그 때를 생각하면...... 아아,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